
[이코리아]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허용하는 농업협동조합법(이하 농협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 전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단임제로는 농업계 현안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지금 농협에 필요한 것은 연임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행 농협법은 “회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이 임기 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정부 주도의 농협개혁위원회 논의 끝에 2009년 단임제가 도입됐기 때문. 하지만 4년 임기의 단임제로는 농협의 중장기적 과제를 추진하기 어렵다며, 연임제로 다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신협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등 회장 연임이 허용되는 다른 협동조합 중앙회를 고려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은 지난달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위한 농협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전체 조합장의 88.7%가 연임 허용에 찬성하고 있다며 “농협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으로 연임제를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등 농민단체도 5일 성명을 내고 “단임제를 고수하면 농협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며 “중앙회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막기 위한 여러 안전장치가 마련됐고 조합에선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 연임에 따른 폐해보다는 긍정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 현직 회장도 연임 허용? 개정안 두고 의견 분분
하지만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앞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달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윤재갑·김승남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선교·이만희 의원(국민의힘) 등이 발의한 농협법 개정안 4건을 논의해 찬성 6명, 기권 3명으로 가결했으나, 회의 내에서는 일부 의원이 이에 반발해 퇴장하는 등 격론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 측은 해당 개정안이 현직 회장까지 적용된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실제 윤재갑 의원이 발의한 농협법 개정안에는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 당시 재임 중인 회장에 대하여도 적용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만약 농협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지난 2020년 1월 취임한 이성희 중앙회장도 이론상 2028년 1월까지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
이지웅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지난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후진적인 농협중앙회장 선거제도와 막대한 권한 행사로 ‘현직 프리미엄’이 분명한 상황에서 연임제 도입은 현직 회장을 위한 특혜”라며 “현직 농협중앙회장에게 소급 적용되는 연임제를 도입해달라는 요구는 농협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이익을 위한 것이며 향후 연임을 위한 권한 오남용을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어 “ 현직은 농협중앙회 내부의 정보를 독점할 수 있고, 인사를 장악할 수 있으며, 특히 ‘무이자 자금’ 등 막대한 권한을 통해 유권자인 조합장을 포섭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며 “이런 점에서 현직에 적용되는 연임제를 발의하고 농해수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연임제를 가결한 것은 국회의 입법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 농협중앙회, ‘연임’보다 ‘책임’ 필요
일각에서는 농협중앙회의 국회 로비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8일 농해수위 회의에서 “이성희 회장은 농협법 셀프 연임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 국회 전문위원, 농식품부 등에 조직의 인력 및 비용을 들여 조직을 나락으로 몰고 가면서 로비를 하고 있다”며 “입법 로비를 위해서 중앙회 기획실을 통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특히 국회의원 등에게 농협 지역본부장을 시켜 로비자금을 전달하고 있으며 때로는 회장 자신이 국회의원을 비밀스럽게 만나서 비자금을 직접 전달하고 있고 이러한 로비 대상 의원 명단은 중앙회 기획실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남 법안소위원장은 윤 의원의 발언에 대해 “출저 없는 개인의 전달된 문자를 여기서 읽으시면 안 된다. 그런 것은 법적 고발조치를 하라”고 반박했으나, 윤 의원이 다시 “왜 오해받을 짓을 무리하게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하는 등 소란이 일기도 했다. 윤 의원은 법안소위 일주일 뒤인 지난달 16일 연임제를 도입하더라도 법률 개정 당시의 회장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농협중앙회가 내부 과제를 놔두고 연임제 도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7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농협의 한 직원이 결혼한지 석달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들은 1년 넘게 이어진 직장 내 괴롭힘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며 “농협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진상 조사를 맡은 담당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와 수년간 지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이어 “기본부터 무너진 농협의 문제는 농협이 재계순위 10위에 달할 정도로 거대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무소불위로 방치된 채 뿌리부터 썩어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농협은 자성은커녕 현직 중앙회장의 연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법 개정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직 프리미엄과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개정 이후 선출된 회장부터 연임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농협 중장기적 과제의 원활한 추진이라는 개정 취지를 고려하면 현직 중앙회장의 연임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만큼 농협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농협법 개정안 논쟁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