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현대로템이 지난 2월 모로코 철도청으로부터 2조 2027억 원 규모의 2층 전동차 공급 계약을 수주하며 한국 철도 산업의 해외 진출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윤석열 전 정부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초저리 정책자금인 EDCF(대외경제협력기금)을 통해 사업의 경쟁력을 높였고, 이를 ‘세일즈 외교’의 대표 성과로 홍보했다.

하지만 해당 수주 과정에서 2조2000억 원이라는 이례적 규모의 EDCF 지원이 이뤄지면서 ‘특혜 논란’도 동시에 불거졌다. 특히 수혜 기업이 대기업인 현대로템이라는 점, 모로코가 EDCF의 아프리카 중점지원국도 아니라는 사실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며 '공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현대로템은 이번 수주가 '민관 합작 '코리아 원팀'의 성과'라며 국내 중소기업 200여 개사가 부품의 90%를 공급해 상생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로템은 1990년대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35년간 전 세계 약 40개국에 전동차를 공급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2022년 기준 글로벌 전동차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 CRCC(73%)와 프랑스 알스톰(6%)에 이어 3위(4%)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가성비와 기술력을 앞세운 철도용 전동차를 통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와 수익 증대를 목표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철도업계에 따르면, 모로코 철도 프로젝트의 전체 사업비는 약 5조2400억 원 규모이며, 이 중 약 절반 가량을 현대로템이 수주했다. 모로코는 2030년 스페인·포르투갈과 함께 월드컵을 공동 개최할 예정으로, 이번 사업은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의 일환이다. 현대로템은 이번 사업을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다.

이번 2조2000억 원 규모의 모로코 전동차 수주 계약은 전동차 부문 수익성 제고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서재호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모로코 전동차의 수주 성공은 현재 생산과 기술 이전을 내걸며 스페인의 CAF사를 이기고 해당 사업을 수주했는데 약 4%의 영업이익률과 더불어 수주 계약기간인 2027~2032년 동안 평균 360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EDCF 지원의 적절성을 의문시한다. 모로코는 EDCF의 아프리카 10개 중점협력국(탄자니아·이집트 등)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단일 사업에 2조2000억 원 규모의 차관이 승인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출처=한국수출입은행
출처=한국수출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이 최근 공개한 ‘최근 5년간 EDCF 승인사업 자료(2025년 3월 기준)’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1분기까지 총 95건의 EDCF 사업이 승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약 19건 내외의 사업에 개발도상국 대상 차관 지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지원금액은 해마다 확대되는 추세다. 2023년에는 총 4조2045억 원, 2024년에는 4조9243억 원 규모의 지원이 승인됐다. 그러나 개별 사업 기준으로는 대부분 건당 2천억 원 이하의 중소형 프로젝트가 중심이다.

이러한 평균적인 지원 규모와 달리, 현대로템이 수주한 ‘모로코 2층 전동차 공급사업’에는 단일 사업 기준으로 2조2천억 원이 EDCF에서 투입됐다. 이는 최근 5년간 승인된 모든 사업 중 가장 큰 금액으로, 연간 집행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다.

지원 대상 국가 역시 주로 아프리카 중점협력국(이집트,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과 동남아·중남미(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등)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모로코는 외교부의 ODA 기준상 일반협력국으로, 기존 EDCF 사업 승인 사례가 거의 없었던 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로코 사업은 단일 철도 차량 프로젝트로는 전례 없이 대규모 자금이 지원됐다.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은 지난 17일부터 ‘제30차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협력 워크숍’을 개최 중이다. EDCF 협력 워크숍은 수원국 공무원을 초청해 △수원국과의 협력 기반을 조성하고 △EDCF 사업 현황 및 사업관리방안 협의 등을 통해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도모하기 위해 개최하는 행사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아프리카 중점지원국 공무원 18명을 초청해 개발재원 소요를 고려한 EDCF의 아프리카 지원비중 확대, ‘K-파이낸스 패키지’ 등을 통한 그린·디지털·공급망 분야 집중 지원 등 대 아프리카 EDCF 지원방향과 개발전략을 논의했다. 하지만 대규모 EDCF를 승인한 모로코는 초대되지 않았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25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기차 사업은 원래 규모가 크다”며 “국내 기업이 국제 경쟁입찰에서 프랑스·스페인 기업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EDCF 지원은 필수적이었다. 중소기업 협력사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랑 스페인이 경쟁국인데, 여기를 이기고 딴 것이다. 당연한 걸 누가 줬다 하면 특혜인데, 이건 한국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을 따낸 것”이라며 “특혜라는 언어 자체가 좀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정부는 “현대로템 수주는 중소 협력사에 낙수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런 기대가 실제 효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지난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로템이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낮춘 혐의로 과징금 4억1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낙수효과를 내세운 국세 지원이 정작 하청업체에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셈이다. 또 한국수출입은행법 제18조는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진출을 주요 업무로 명시하고 있어, 현행 EDCF 운영이 법 취지와 배치된다는 비판도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 리스크 관리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DCF 전문가는 "모로코의 40년 상환 능력과 정부의 사후 평가 체계가 핵심"이라며 "기획재정부는 지난 2023년부터 매년 'EDCF 평가 연차보고서'를 발표한다. ODA 사업 평가를 하니까 (모로코 수주 사업이) 대상이 되면 성과 분석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로템의 모로코 진출이 K-철도의 해외 시장 확장이라는 국익과 맞물리는 만큼, 정부의 투명한 사업 평가와 리스크 관리가 논란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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