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리아] 세계 2차대전 이후 세계인들은 전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어느 지역의 국지적인 갈등 정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금세기 들어 그런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이 펼쳐지고, 범위도 어느 한 지역의 갈등이 아니라 수십 개 나라가 가담하는 확전으로 펼쳐진다. 하루가 다르게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한다. 이런 식이라면 어느 전선에서 핵무기가 사용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게 여겨질 정도다.
22일 일요일 새벽(현지시간), 미국이 이란 핵시설 세 곳을 공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미군 당국자를 인용해 B-2 스텔스 포격기 6대가 포르도 핵시설에 3만 파운드(약 13.6톤) 짜리 벙커버스터 12발을 투하했으며, 미 해군 잠수함이 나탄즈와 이스파한 핵 시설에 토마호크 미사일 30발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또 한대의 B-2 포격기가 나탄즈에 벙커버스터 2발을 투하했다고 전했다.
작전은 일단 이란 핵시설에 대해 직접적이고 정밀한 타격을 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란 핵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무력화시켰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이란 핵시설은 지하 수십 미터에 매설된 벙커형 구조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이 기존의 억제 정책에서 ‘외과 수술식 선제타격’으로 돌아섬으로써 어디까지 전선을 확대할지 국제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란은 공격을 당한 직후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원유의 25%와 LNG 20%가 이곳을 통과해 수송된다. 자국의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제 폐쇄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폐쇄가 현실화 된다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산유국들이 이란 편에 서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가 중동산인데, 중동산 원유의 거의 전부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산업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비용이 각각 5.19%와 1.39% 오를 것으로 분석한다.
이번 작전의 충격파는 중동은 물론 전세계로 확산하게 될 것이다. 외신들은 이란이 미국의 협박에 굴복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만약 이란이 지금까지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번 공격이 그 결정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본다. 이란은 9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농축 우라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무기화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국제사회는 이번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거나 우려하는 입장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공격을 “세계 평화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자 “위험한 전환점(perilous turn)”이라며 외교적 해결이 없는 군사 행동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는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지지”하면서도 외교적 대화 복귀 필요성을 강조했다. EU·프랑스·독일 역시 강경한 비핵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군사적 해법이 아닌 외교”를 요청하고 있다.
사우디·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들은 미국의 공격에 우려를 표하며 “즉각적인 긴장 완화와 외교 복귀”를 촉구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공습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위험한 긴장이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중국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무력 개입이 확산하면 대만해협, 남중국해 문제에 연결될 수 있다. 북중러 삼각 연대는 이를 경계하며 정보·군사 협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이같은 각국의 입장 차이로 인해 이번 전쟁은 쉽게 끝날 수 없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미국이 이스라엘을 대신한 대리전으로 가담한 꼴이라 한층 복잡하다. 게다가 이번 전쟁의 본질은 ‘종교와 체제의 충돌’이다. 종교 문제가 부딪히면 한쪽의 체제가 바뀌기 전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누구도 물러서지 못한다.
이 전쟁의 본질은 국가의 존재 방식, 정체성, 그리고 신념체계에 관한 것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스라엘의 국가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시온주의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구호는 이란 체제 정당성의 일부였다. 반대로 이스라엘에게 이란은 생존을 위협하는 적국이다. “이스라엘이 무너지기 전엔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신정 체제의 논리와 “이스라엘은 존재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본능이 맞서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러시아와 유럽의 대리전이 된 지 오래다. 처음에는 쉽게 종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전쟁이 4년째 지속되는 것은 이런 복잡성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NATO와 미국의 군사적 지원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제국의 경계선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원래 러시아의 일부”라는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이 전쟁을 ‘재통일’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이미 이 싸움을 민족독립과 정체성의 전투로 받아들였다.
이 전쟁도 외부와 메이플 슬롯문제가 얽혀 있다. 유럽 각국, 미국, 심지어 중국과 이란까지 서로의 입장이 섞여 있어서 전쟁이 세계 질서의 시험장이 돼버렸다.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두 체제의 충돌, 이것이 전쟁의 출구를 봉쇄하고 있다.
이-이와 러-우 두 전쟁 모두 이런 구조적 요인 세 가지를 갖고 있다. 첫째는 민족적 정체성의 충돌, 둘째는 외부 세력이 개입된 대리전, 셋째는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다는 점이다. 이런 요인 때문에 이들 전쟁은 쉽게 끝나지도 않고, 끝낼 수도 없다. 전쟁이 대리전 혹은 국제적 갈등의 무대가 되면 분쟁 당사자들이 마음대로 종결할 수 없다. 우리의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장기 비전을 담은 전략 외교가 필수적이다. 중동과 동북아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입장이 명료하게 정리돼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안보 공조는 강화하되, 대북 위기관리 능력이 고도화돼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 경제강국 10위권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지만, 5천 년 역사에서 메이플 슬롯사적으로는 가장 비극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일제 식민지를 제외하곤 우리 역사에서 타메이플 슬롯에 의해 40년 가량을 통째로 식민지로 살았던 적이 없다. 그 후 아무런 국제적 과오가 없음에도 세계의 무수한 협정과 선언이 보장하는 자치정부가 수림되지 않았고, 나라가 분단되었다. 그 이후 80년째 메이플 슬롯이 갈린 상태로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닥쳐오면 우리 민족은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아니, 일어설 수 없다. 민주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결, 주변 강국들의 첨예한 이권 다툼 등 누구의 힘으로도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존영의 앞날은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대북 안보위기를 확실하게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약소국의 정체성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은 남과 북 서로를 자극하는 어떤 도발도 금물이다. 대북 풍선 날리기 등 미운 감정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북한도 분명하게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우리 민족에게 존망의 문제를 질문하고 있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