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화재에서 마음지키기, 출처-재난정신건강정보센터]](https://cdn.ekoreanews.co.kr/news/photo/202508/81698_102057_4330.jpg)
[이코리아]인천의 한 하바네로 슬롯서에서 근무하던 하바네로 슬롯관이 8일째 실종돼 경찰과 하바네로 슬롯당국이 전방위 수색을 벌이고 있다. 그는 2022년 이태원 참사 현장 지원 이후 우울증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청의 ‘2023년 소방공무원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만 2,802명 중 43.9%가 PTSD·우울·수면장애·문제음주 중 하나 이상에서 ‘관리·치료가 필요한 위험군’에 해당했다. 항목별(복수응답)로는 PTSD 선별 양성 6.5%, 우울 6.3%, 수면장애 27.2%, 문제음주 26.4%였고, 자살사고(생각) 경험을 밝힌 이도 8.5%에 달했다. 숫자가 말하듯, 현장의 마음은 ‘예외’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에 놓여 있다.
![[사진-범정부 재난심리지원 안내, 출처-국가트라우마센터]](https://cdn.ekoreanews.co.kr/news/photo/202508/81698_102060_5918.jpg)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사후적’에 가깝다. 중앙정부는 국가·권역 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재난 대응 인력 대상 소진관리 프로그램(심리평가–개인상담–집단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각 시·도 소방은 자체 상담·치료 연계를 확대해왔다.
지난 7월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소방관 전담 심리상담시설 ‘경기119마음건강센터’를 열어 일선 접근성을 높였다. 그래도 전국 네트워크와 표준운영절차(SOP) 수준의 의무화에는 아직 간극이 있다. 현장에서는 있다는 사실을 몰라 신청조차 못 하거나, 낙인·인사 불이익 우려로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반면에 해외는 ‘조직 의무–동료 체계–추정 보상’의 세 축이 맞물린다. 미국은 미국 국가화재방지협회(NFPA)의 ‘NFPA 1500’ 규정이 소방조직의 안전·보건 최소 요건을 정하면서 ‘행동건강(Behavioral Health)’ 체계가 뚜렷하다. 여기에 미국·캐나다 소방노조인 국제소방관협회(IAFF)가 전국 단위 동료지원(피어) 교육과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형 사건 뒤에는 PTSD 선별·평가 체크리스트(PCL-5)로 위험을 감지하고, 동료가 1차로 개입해 지지하고 다음 임상 전문가로 연계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영국은 공공·민간이 결합한 정신건강 단체인 마인드(Mind)의 ‘블루 라이트 프로그램(Blue Light Programme, 경찰·소방·구급 등 긴급구조 인력 정신건강 지원)’과 TRiM(트라우마 위험관리) 같은 동료기반 모델이 널리 쓰인다. 핵심은 기관의 ‘의무’와 동료의 손이 먼저 다가가는 구조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16년부터 소방·경찰 등 ‘첫 대응자’의 PTSD를 업무상 재해로 ‘추정’하는 법을 도입해, 진단이 확인되면 원칙적으로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고 치료·휴직 접근을 빠르게 한다. 호주 연방도 최근 첫 대응자 PTSD에 대해 업무 관련성을 추정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바꾸고, 주(州) 차원의 간소화 절차를 이행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재해보상 체계가 존재하더라도 PTSD에 대한 ‘추정’ 규정이 일반화돼 있지 않아, 개인이 업무 관련성을 소명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현장 대응자의 마음건강을 다뤄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소방행정 연구자들은 공통으로 네 가지 지점을 짚는다. 대형 사건에 투입된 대원을 대상으로 전수 선별을 정례화하고, 선별 후에는 동료 개입–전문의 치료–복귀·재배치로 이어지는 행동건강 프로토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안전·산재 보상 분야 전문가들은 치료 접근의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제도 설계라며, 일정 요건을 갖춘 첫 대응자(소방·구급 등) PTSD에 대한 ‘업무상 추정’ 원칙을 검토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든다. 현장 지휘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은 사고 직후 강제 휴식, 야간 로테이션 제한, 관리자 평가에 ‘심리안전’ 지표 반영 같은 조직 관리 장치가 실제 이용률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관건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표준화된 절차, 가까운 접근성, 입증 부담을 줄이는 보상 구조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실종된 소방관의 소식은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넘어 질문을 던진다. 현장을 지키는 사람을 누가 지키는가. 상담실 문턱과 보상 서류 사이에서 시간을 놓치는 사이, 위험은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