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총링케 슬롯 열매; 빨간 포도송이 모양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 열매; 빨간 포도송이 모양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이코리아] 어느덧 6월의 세 번째 절기인 망종(芒種)을 지나, 1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남아 있지만, 곧 맹렬한 여름 더위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보에 벌써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여름의 열기는 숲의 생명력을 더욱 왕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여름의 문턱에서 우리 숲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특별한 나무가 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할 딱총나무이다.

딱총링케 슬롯 링케 슬롯껍질; 코르크가 두껍게 발달한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 링케 슬롯껍질; 코르크가 두껍게 발달한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는 필자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링케 슬롯다. 필자의 석사학위 연구 주제가 바로 우리나라 한반도에 분포하는 딱총링케 슬롯속(Sambucus) 식물들의 분류학적 연구였기 때문이다. 딱총링케 슬롯라는 이름은 수수깡처럼 두꺼운 심(pith)으로 차 있는 가지 속을 비워 대롱처럼 만든 뒤, 딱총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딱총나무는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의 접골목(接骨木)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뼈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처럼 다재다능한 가치를 지닌 딱총나무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 탐스러운 붉은 열매를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단다. 빛이 드는 숲길이나 등산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열매는 여름 숲에 생기를 더하는 매력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딱총링케 슬롯 꽃; 이른봄 노란색으로 핀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 꽃; 이른봄 노란색으로 핀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 꽃; 암술머리가 노란색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 꽃; 암술머리가 노란색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나무라는 이름보다는 영어명인 ‘엘더(Elder)’가 더 친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최강의 지팡이로 등장하는 엘더 완드(Elder Wand)가 바로 이 딱총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이 엘더의 열매인 엘더베리를 감기약이나 잼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딱총나무 열매는 약재로 쓰이기는 하지만 독성이 있어 서양의 엘더베리처럼 식용으로는 활용되지 않는다.

딱총링케 슬롯와 유사한 링케 슬롯로 제주도에 자생하는 덧링케 슬롯가 있다. 덧링케 슬롯는 딱총링케 슬롯의 노란색 암술머리와 달리 붉은색 암술머리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잎과 링케 슬롯의 형태가 매우 비슷해 두 링케 슬롯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 과거부터 많은 식물분류학자들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한반도 내륙에는 주로 딱총링케 슬롯가, 제주도에는 덧링케 슬롯만 자생한다는 지역적 분포 차이다. 필자도 덧링케 슬롯의 개화 시기인 3월 말에서 5월 초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덧링케 슬롯의 붉은 암술머리를 확인하며 그 독특함에 늘 신기함을 느끼곤 한다.

덧링케 슬롯 열매; 빨간 포도송이 모양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덧링케 슬롯 열매; 빨간 포도송이 모양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덧링케 슬롯 꽃; 암술머리가 붉은색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덧링케 슬롯 꽃; 암술머리가 붉은색이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 덧링케 슬롯처럼 전 세계에서 울릉도에만 유일하게 자생하는 또 하나의 특별한 링케 슬롯가 있다. 바로 말오줌링케 슬롯이다. 말오줌링케 슬롯라는 이름은 잎이나 줄기에서 말의 오줌과 유사한 냄새가 난다는 데서 유래했다. 말오줌링케 슬롯는 앞서 소개한 딱총링케 슬롯나 덧링케 슬롯에 비해 링케 슬롯의 크기가 훨씬 크고, 꽃차례의 규모가 거대하다. 열매가 맺히는 시기의 말오줌링케 슬롯는 아래로 늘어진 풍성한 열매 송이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링케 슬롯에서 나는 냄새가 오줌 냄새보다는 고무 타는 듯한 냄새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향긋하지 않은 냄새에도 불구하고 흐드러지게 달린 꽃과 열매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말오줌링케 슬롯 수형; 꽃이 흐드러지게 달린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말오줌링케 슬롯 수형; 꽃이 흐드러지게 달린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말오줌링케 슬롯 꽃; 꽃뭉치가 아래로 처진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말오줌링케 슬롯 꽃; 꽃뭉치가 아래로 처진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와 덧링케 슬롯를 구분하는 중요한 형질이 암술머리 색인 것처럼, 말오줌링케 슬롯는 붉은색, 노란색, 그리고 두 가지 색이 혼합된 다양한 암술머리 색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필자는 석사논문에서 이러한 형태적 특징과 유전적 분석(동위효소 분석) 결과를 종합하여, 울릉도 말오줌링케 슬롯가 딱총링케 슬롯와 덧링케 슬롯의 자연적인 종간 교잡으로 형성된 새로운 링케 슬롯라는 결론을 제시한 바 있다.

말오줌링케 슬롯 링케 슬롯껍질; 코르크가 두껍게 발달한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말오줌링케 슬롯 링케 슬롯껍질; 코르크가 두껍게 발달한다. 출처=들꽃세상. 자료=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딱총링케 슬롯, 덧링케 슬롯, 그리고 말오줌링케 슬롯는 여름의 초입을 붉게 물들이며 숲에 생기를 불어넣는 매력적인 우리링케 슬롯이다. 이들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져 왔으며, 오늘날 다양한 연구를 통해 여러 약리 성분을 함유하고 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이 링케 슬롯들은 미래의 중요한 산림생명자원으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약용자원연구소는 우리나라 특산수종인 말오줌링케 슬롯의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처럼 딱총나무속 식물들은 아름다운 외형적 특징과 생화학적 가치를 겸비한 진정한 ‘팔방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여름, 우리 곁에서 붉은빛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딱총나무 삼형제를 마주한다면, 그들이 지닌 특별한 아름다움과 숨겨진 가치를 떠올리며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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