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리아] K팝에 이어 K콘텐츠의 다음 승부수는 인공지능(AI)이다. CJ ENM이 애니메이션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콘텐츠 전반에 AI 기술을 접목하며 생태계 재편에 나섰다.
1일 업계에 따르면 CJ ENM은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개최한 ‘CJ ENM 컬처 TALK’ 행사에서 AI 콘텐츠 사업 전략을 발표하고 자체 AI 애니메이션 시리즈 ‘캣 비기(Cat Biggie)’를 처음 공개했다. 회사 측은 이를 시작으로 한국 정서를 담은 장편 영화 ‘아파트’(가제)와 글로벌 신화를 모티프로 한 어드벤처 드라마 시리즈 등 다양한 AI 콘텐츠 라인업을 연내 선보일 계획이다.
CJ ENM 신근섭 전략기획담당은 “현재 기획, 제작, 유통·마케팅 등 콘텐츠 제작 단계 전반에 AI 기술을 적용해 프로세스를 선진화하는 한편, 다양한 장르와 포맷의 AI 콘텐츠 제작을 확대해 신유형 원천 IP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AI 기술, 콘텐츠 기획, 사업 역량을 모두 겸비한 전문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고 AI 콘텐츠에 특화된 조직을 확대해 글로벌 AI 스튜디오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CJ ENM은 자체 개발한 ‘시네마틱 AI’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드라마·영화 제작에 최적화된 AI 영상 제작 도구로, 이미지·비디오·사운드·보이스 등을 원스탑으로 처리할 수 있어 제작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AI 에이전트 ‘AI 스크립트’를 활용해 트렌드 분석과 원천 IP 발굴에도 나선다.
이날 행사에서 공개된 AI 애니메이션 ‘캣 비기’는 CJ ENM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사례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5개월이 걸렸으며, 제작 인원은 AI 전문가 6명에 불과했다. 기존 3D 애니메이션 제작 기간(3~4개월) 대비 70% 이상 단축된 수치다. 백현정 CJ ENM AI 사업추진팀장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동작과 표현을 AI로 구현하는 게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CJ ENM은 콘텐츠 기획 단계에도 AI를 도입하고 있다. ‘AI 스크립트’는 트렌드 및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유망 원천 IP를 발굴하고 최적의 장르 및 플랫폼까지 제안해주는 시스템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AI 콘텐츠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생성형 AI 기반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2023년 116억 달러에서 2033년 1,753억 달러(약 237조5490억 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31.2%에 달한다.
증권가에서도 CJ ENM의 콘텐츠 전략을 둘러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민하 삼성증권 연구원은 “시장 환경 등의 영향으로 실적 부진이 지속되면서 아쉬운 행보를 보였지만, 콘텐츠 경쟁력 회복 등으로 TV 광고 성과도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콘텐츠 라인업을 고려할 때 피프스시즌도 손익 개선이 예상된다"며 "음악 사업은 IP에 기반한 성과 확대 기조를 이어갈 전망으로 아티스트 라인업이 탄탄해진 만큼 점차 수익성도 올라올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최 연구원은 "정부의 콘텐츠, OTT 등에 대한 육성 의지가 강한 만큼 정책적 수혜도 기대해 볼 수 있다"며 "오랜 시간 끌어온 티빙과 웨이브가 부분적으로나마 시너지를 보여주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돼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된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김규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K-OTT 육성 경우의 수로 △ 새로운 플랫폼 출시와 △ 기존 플랫폼 지원이 있는데 전자는 사업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후보는 두 개로 추릴 수 있는데 티빙과 웨이브다. CJ ENM이 통합 플랫폼 출범을 추진중이므로 어떠한 방향이건 동사의 단일 플랫폼이 유일한 후보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뚜렷한 정책적 지원은 국가 정책 차원의 통합 플랫폼 출범 추진이다. 티빙의 주요 주주와의 이견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에서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티빙 트래픽 감소, 넷플릭스와의 경쟁, 콘텐츠 전략 등이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AI 기술만으로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1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자본력 없이 AI 가지고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 상대를 하겠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업체들은 이미 자본력으로 IP를 소유했다"며 "결국에는 글로벌 플랫폼을 가지든지, 아니면 자본을 가지든지 둘 중 하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은 그런 게임”이라고 말했다.
CJ ENM이 문화사업 출범 30주년을 맞아 AI 기술과 크리에이티브를 결합해 K콘텐츠의 미래를 열어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