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리아]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에서 화석연료의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2일 글로벌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가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025년 4월 국내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49.5%(21.8TWh)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50.4%(22.6TWh)를 밑도는 수치로, 전력 수요가 1.4%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된 하락세다. 국내 에너지 전환이 구조적으로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번 하락의 핵심 요인은 석탄 발전의 급감이다. 2025년 4월 석탄 발전은 전체의 18.5%(8.2TWh)로, 월간 기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같은 달과 비교해 36%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전력 부문 탄소배출량도 670만 톤으로 감소하며, 37%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스발전은 뚜렷한 감소 없이 여전히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어 전환 과정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1인당 발전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5톤으로, 이는 세계 평균의 약 3배에 달한다.
화석연료 감축을 견인한 또 다른 축은 태양광 발전의 빠른 확산이다. 2025년 4월 태양광 발전 비중은 9.2%로, 2024년 5월의 최고치(8.7%)를 경신했다. 발전량은 4TWh로 2021년 동월(2.3TWh) 대비 거의 두 배 수준이다. 1~5월 신규 설치된 태양광 설비는 1.56GW로, 전년 동기 대비 61% 증가해 2년간 이어진 감소세를 반전시켰다.
이에 대해 엠버의 선임 데이터 분석가 니콜라스 풀검은 “최근 몇 달 동안 태양광 발전의 보급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한국은 풍력, 태양광, 배터리의 빠른 보급을 주도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풀검은 이어 “이러한 주요 청정 에너지 기술을 한국 시장에 더 빠르게 도입하는 것은 한국의 에너지 공급을 강화하고 수입 가스와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덧붙였다.
기후솔루션 한가희 전력시장계통팀 팀장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매우 더딘 상황에서, 화력발전기의 출력 하향 조치와 재생에너지의 계통 우선 연계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보다 가속화해야 한다"며 "화력발전을 더욱 공격적으로 축소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정부는 탈석탄 시점을 기존 계획보다 앞당겨 2040년 이전으로 설정하고, 유연성 자원을 확대해 가스발전 의존도를 조속히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환 성과는 여전히 미흡하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이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37개 기업이 RE100(재생에너지 100%)에 가입한 상태이나, 2024년 기준 이들의 RE100 달성률은 12%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평균 42%에 한참 못 미치며, 유럽 83%, 미국 67%, 중국 59% 등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밝혔다.
한 이사는 “우리 기업들의 주요 고객사들인 애플,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BMW(98%) 등은 자체적으로 RE100을 이미 달성한 상태이고, 밸류 체인 전체로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며 “RE100 기업들이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직접 투자하는 것을 활성화시키지 않으면 우리 기업들의 수출 역량은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탈화석연료 흐름은 최근 급증하는 AI 및 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와도 직결된다. 지난 6월 18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지금이 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자리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에너지전환포럼이 김성환 의원실, 국회기후위기탈탄소경제포럼과 공동으로 ‘AI 혁신 성장을 위한 에너지 정책 방향’을 주제로 마련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AI의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미래는 미국과 중국만이 주도하기엔 너무나 중요하다”며 “한국이 AI의 방향을 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에너지 수요 변화와 지속 가능한 에너지 구조를 설계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AI와 에너지 구조 혁신의 교차점에서 한국은 노동자 친화적 AI와 재생에너지 기반 성장이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존스홉킨스대 다르시 드라우트 컨설턴트도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국가 핵심 산업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은 선택이 아닌 경제적 필수 조건이 되었다”며 “친환경 반도체 정책조정기구 신설 등 정책 이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2050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소비가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의 25%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와 PPA(전력구매계약)를 통한 통합적 에너지 정책 추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4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내 신규 LNG 발전소 6기 발전 사업을 허가한 바 있다.
임장혁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그린피스와 기후솔루션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용인 국가산단을 조성할 시, 삼성전자의 2030~2050년 전력 요금이 LNG 발전 대비 최대 30조 원 절감될 수 있다”며 “새 정부의 RE100 국가산단 조성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