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리아] 200조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는 주요 임상 결과 발표가 예정되어 있어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과 상업화 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이어질 전망이다.
1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는 지난 7일(현지시간) 경구용 GLP-1 비만 치료제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의 3상 임상 결과(ATTAIN-1)를 공개했다. 72주간 최고 용량(36mg) 투여 시 평균 체중 12.4% 감소 효과를 확인했으나, 시장 기대치(15%)에는 미치지 못해 주가가 14% 급락하는 등 실망감이 컸다. 그러나 경구 제형의 편의성과 대량 생산 가능성, 투약 중단율 개선(2상 대비 5.1~10.3%로 감소) 등 장점도 부각되며, FDA 승인 신청을 앞두고 있다. 릴리는 이 약물을 주사제 대체 또는 유지 요법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15% 감량 효과를 나타낸 노보 노디스크의 'Rybelsus'와 경구용 GLP-1을 개발 중인 바이킹 테라퓨틱스의 'VK2735‘ 등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바이킹의 주가는 오포글리프론 결과 발표 후 11.54% 상승하며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했다. 로슈는 내약성 문제로 인해 타이트레이션(특정 약물의 효과를 최적화하기 위해 용량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과정) 기간이 짧은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으며, 화이자는 경구 GLP-1 후보 ‘다누글리프론’을 개발을 중단한 상태다.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앤설리번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801억 달러(약 112조원)으로, 5년 뒤인 2028년에는 1423억 달러(약 19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시장은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가 주도하고 있지만, 고가와 메스꺼움·구토 등 위장관 부작용 문제가 여전히 한계로 꼽힌다. 이 틈새를 노리고 경구용을 비롯해 비만 치료제 경쟁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국내 기업들도 경구용 및 주사제 비만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미약품이 다음 달 ‘에페글레나타이드’(GLP-1 RA) 임상 3상을 마무리하고 연말 톱라인 데이터를 공개한다. 위장관 부작용을 완화하고 ‘한국인 맞춤형’ 차별성을 내세워 이르면 내년 하반기 국내 최초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상용화를 노린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11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한미약품은 단순히 체중 감량에만 초점을 둔 단일 약물 중심의 개발 전략이 아니라, 비만이라는 복합 대사질환에 대한 전주기적 관리와 환자 맞춤형 솔루션 제공이라는 전략을 기반으로 비만치료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왔다"며 "한미의 비만 신약 ‘H.O.P(Hanmi Obesity Pipeline)’ 프로젝트는 기전의 다양성, 약리 효과의 차별성, 복약 편의성, 생산 공급 안정성까지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 해법을 제시하며,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정면으로 보완하고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또 GLP/GIP/GCG 삼중작용제 ‘HM15275’의 고용량 장기 투여 임상 2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근육량 증가 효과가 기대되는 ‘HM17321’도 임상 1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자회사 메타비아를 통해 GLP-1/GCG 이중작용제 ‘DA-1726’의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연내 체중 감소 효과와 안전성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 일동제약은 저분자 경구 GLP-1 후보물질 ‘ID110521156’의 저용량 임상 1상에서 긍정적 체중 감소 효과를 입증했고, 9월 고용량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미국 바이오기업 멧세라에 이전한 경구 GLP-1 6종 가운데 ‘MET-224o’의 4주 투여 결과를 연내 공개한다.
하반기에는 비만·대사질환 분야의 대형 학회가 잇달아 열린다. 9월 유럽당뇨병학회(EASD), 10월 비만 서밋(Obesity Summit), 11월 비만 위크(Obesity Week)에서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비임상과 임상 결과를 발표한다.
SK증권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내달 15일~19일 개최되는 EASD 학회에서는 한미약품이 총 6건의 비임상 결과를, 비상장 기업인 JD Bioscience, SN BioScience, ProGen(코넥스상장사)이 차세대 GLP-1 파이프라인의 비임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미국 슬롯사이트 큐어벳치료제 기업 멧세라,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 베링거인겔하임 등 해외 기업들의 경우, 기존 GLP-1의 확장 가능성 및 신규 포트폴리오인 아밀린, 신규 타겟 슬롯사이트 큐어벳 치료제, 경구형의 다양한 임상 결과 발표를 예고하고 있다.
이선경 SK증권 연구원은 "마드리갈 파마슈티컬스는 지난 7월 30일 CSPC의 저분자 경구용 GLP-1인 SYH2086을 전임상 단계에서 계약금 1억2000만 달러를 포함, 총 21억 2000만 달러 가치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GLP-1 경쟁 심화에도 불구하고 투자 열기는 지속되고 있는 상황으로, 비만/대사 파이프라인의 개발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이라며 "개발 후발주자인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임상 결과 발표에 따른 글로벌 판도변화를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