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대학에 다니는 필자의 딸이 자신의 선배가 보내 준 기사를 보며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 하길래, 필자는 웃으면서 “그럴 리가 있겠냐”며 믿지를 않았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뉴스를 보니 윤 대통령이 실제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 아닌가.
그의 계엄 선포는 실로 기행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은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가 아니므로 ‘비상계엄’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므로 ‘경비계엄’의 조치가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법조인 출신인 대통령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도 이렇게 헌법을 유린하는 조치를 취한 데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탄핵 남발로 인해 행정부로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은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이 표로 평가할 일이지, 대통령이 이렇게 나서서 극단적인 조치를 통해 해결할 사안은 아니다. 아니, 해결될 수도 없는 일이다. 여소야대 국면의 대통령으로서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자 했다면 보다 균형 있는 인사와 협치로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 나갔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정치 능력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대통령의 이번 계엄령 선포로 인해,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한 자유·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심각한 모독을 느낀다. 우리가 어떻게 이룬 자유·민주주의던가?
구한말, 무능했던 조선 왕조와 그에 기생하며 백성들의 노동으로 먹고 살던 양반 세력이 결국 무기력하게 일제에게 나라의 주권을 넘겨주게 되고, 나라 잃은 절망 가운데에서도 각계각층에서 보이게/보이지 않게 활동하던 독립투사들 및 민초들의 의지로 일제의 탄압에 맞서 우리의 문화와 말을 간신히 지켜오던 중, 너무나 열망하고 또 열망하였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닿지 않던 독립을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겨우겨우 성취한 이후에도, 지금은 실패했으나 당시에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던 공산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남쪽에서나마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룰 수 있었고, 직후 이름은 김일성이나 실제로는 김일성이 아닌 독재자의 욕심이자 오판으로 인해 삼천리금수강산이 전쟁의 화마에 휩싸여 죽어 나간 이만 300만 명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의 피값으로 나라를 겨우 지켰건만, 그 이후에 이어진 독재/군사 정권은 이 땅의 씨알들에게 쉽게 자유·민주주의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시기를 지나는 동안 다시 한 번 수많은 민주투사들(우리의 동료/선배이기도 했던 이들)의 고귀한 피·땀·목숨이 바쳐져, 비로소 우리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이다.
필자의 세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태어나지 못했지만, 우리의 자녀들은 드디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들은 타고 난(native) 자유·민주주의 시민이다. 필자는 그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자녀 세대들에게 자유와 민주를 물려줄 수 있었던 (역사가 기억할) 특권의 세대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계엄령 소식을 들은 직후 나의 여섯 명의 자녀들을 모아 놓고, 이 천인공노할 일을 그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최대한 차분히 설명하려 했지만, 그들 중 몇은 불안을 넘어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나는 여러 말과 기도로 그들을 애써 안심시킨 후 그들을 잠자리에 들게 해야 했다. 그러고는 한 명의 교육자로서 또 글쟁이로서 내가 해야 할 일 앞에 앉은 것이다.
그렇게 급하게 글을 쓰는 와중에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가 결의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삼일천하’도 아니고 ‘세 시간 천하’다. 법조인 출신의 대통령이 이렇게 될 것을 정녕 몰랐단 말인가?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이고, 혹시라도 이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내란 음모가 아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모독했다. 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의 선조들과 선배들이 흘렸던 피와 땀과 목숨을 헛되이 했다. 우리의 자녀 세대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를 이끌어갈 자격을 상실했다. 이제 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에게 고한다.
“귀하는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