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리아] 중국의 IT 거대기업 텐센트가 국내 게임사 넥슨의 인수를 고려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며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블룸버그는 12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텐센트가 약 15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로 넥슨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텐센트는 넥슨 창업자 고(故) 김정주 전 회장의 유족 측과 직접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지분 67.6%는 김 전 회장의 부인 유정현 NXC 이사장(33.35%)과 두 딸(각각 17.16%)이 나눠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NXC 측은 법률 자문단과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블룸버그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가 인수안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지, 구체적인 거래 구조는 어떻게 될지 등이 불확실한 단계라고 덧붙혔으며 업계에서는 유정현 의장과 두 자녀가 지난해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경영 안정을 위해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지 않고 상속세를 완납했던 만큼, 매각에 응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한국 정부의 외국 자본 대형 M&A 승인 여부 등의 변수도 떠오른다. 넥슨과 텐센트는 이번 사안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텐센트는 지난 2019년 김정주 전 회장이 10조원 규모로 NXC 매각을 추진하던 당시에도 넥슨 인수전에 뛰어든 전적이 있다. 당시에는 넷마블, 카카오, MBK파트너스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으나, 텐센트는 본입찰에는 불참했으며 결국 당시 넥슨 매각은 불발된 바 있다. 이후에도 텐센트는 넥슨의 주요 IP인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퍼블리싱을 맡는 등 협력 관계를 꾸준히 이어왔다.
현재 텐센트는 국내외 게임업계 전반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크래프톤(지분 13.86%)의 2대 주주로 창업자 장병규 의장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넷마블(17.52%)과 시프트업(35.03%)에서도 주요 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또 ‘배틀그라운드’, ‘로스트아크’, ‘크로스파이어’, ‘던전앤파이터’ 등 국내 주요 게임 타이틀들의 중국 현지 서비스 권한 역시 텐센트가 맡고 있다.

이러한 텐센트의 지배력은 글로벌 게임업계에서도 더욱 두드러진다. 텐센트는 ‘소수 지분 확보를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부터 ‘경영권 확보 및 완전 인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 유망 게임사를 자사 네트워크로 편입시켜 왔다. 대표적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 ‘워프레임’의 디지털 익스트림즈, ‘패스 오브 엑자일’의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는 텐센트 산하 개발사로 편입된 상태다.
이외에도 다수의 유력 게임사에 전략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에픽게임즈의 경우 2013년 약 40%의 지분을 인수했으며, 현재도 31.8% 수준의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다크소울’과 ‘엘든링’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프롬소프트웨어(16.25%), ‘다잉 라이트’ 시리즈를 개발한 폴란드의 테크랜드(67%), ‘크루세이더 킹즈’와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등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패러독스 인터랙티브(10%) 등도 주요 투자처다.
최근에는 경영난에 빠진 유럽 최대의 게임사 유비소프트와의 대형 거래도 성사시켰다. 유비소프트는 지난 3월, 자사의 핵심 IP인 ‘어쌔신 크리드’, ‘파 크라이’, ‘레인보우 식스’를 전담하는 신설 자회사를 설립하고 해당 자회사 지분 약 25%를 텐센트에 매각했다. 투자 규모는 11억6천만 유로(약 1조8천360억 원)에 달하며, 텐센트는 이 거래를 통해 핵심 프랜차이즈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 권한과 전략적 통제권을 확보하게 됐다.
또한 6월에는 ‘헬다이버즈2’로 주목받은 스웨덴의 애로우헤드 게임 스튜디오 지분 15.75%를 인수하는 등 유럽 개발사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텐센트의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수익 목적을 넘어, 전 세계 게임 IP 생태계에 대한 영향력 확대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텐센트의 움직임에 대해 글로벌 콘텐츠 주권과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시사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지난 2021년 ‘비디오 게임의 지정학’(The Geopolitics of Video Games)이라는 기사를 통해, 중국 자본이 게임 콘텐츠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게임산업의 다양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텐센트처럼 국가와 밀접하게 연결된 민간 기업의 글로벌 M&A 행보는 단순한 투자 확대를 넘어, 게임 서사의 통제권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 역시 지난 1월, '비디오게임은 어떻게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텐센트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게임 산업이 ‘디지털 소프트파워’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해당 기사는 텐센트가 단순한 게임 기업을 넘어,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중국의 문화와 신화, 미학을 자연스럽게 주입하는 콘텐츠 플랫폼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사에 따르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라이엇게임즈, ‘포트나이트’의 에픽게임즈, ‘왕자영요’ 등 텐센트가 투자하거나 운영하는 게임들은 중국 신화 속 인물이나 역사 요소를 게임에 통합하며, 중국 서사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핵심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디플로맷은 “이는 헐리우드·일본 애니메이션이 주도하던 세계 대중문화 지형을 재편하는 움직임”이라며, 중국의 문화 외교 전략이 인프라 투자 중심에서 디지털 콘텐츠 확산 중심으로 이동 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 같은 흐름은 중국 정부의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과 맞물려, 단순 문화 소개를 넘어 장기적인 세계관·가치관 형성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구권 일부에서는 ‘소프트한 문화 침투’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에는 미 국방부가 텐센트를 ‘중국군 지원 기업’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며 주목받기도 했다. 해당 조치는 직접적인 제재를 수반하지는 않지만, 미 정부 및 기업들과의 거래 제한, 투자 기피 등의 후속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당장 해당 조치가 국내 게임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도 텐센트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적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게임업체의 해외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게임 수출 시장 다변화, 투자 생태계 활성화 방안 등을 실효성 있게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업계에서는 강원 랜드 슬롯 머신 종류 제작비에 대한 세액 공제 신설, 중소 개발사 대상 투자 유치 확대, 글로벌 유통망 지원 확대 등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