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리아]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매각 재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조5000억 원 규모의 보통주를 전량 무상소각하며 지분을 내려놓는 동시에, 경영진에 재무 전문가를 전진 배치해 인수합병(M&A) 신뢰도 제고에 나선 것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프라그마틱 슬롯 무료는 최근 배은 경영지원부문장(전무)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배 전무는 CJ그룹에서 30년 가까이 재무 분야를 맡아온 전문가로, CJ푸드빌과 CJ올리브영에서 CFO를 지냈다. 2023년 프라그마틱 슬롯 무료에 합류한 후에는 재무기획, 물류, 운영지원, IT 등 핵심 부문을 총괄해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정기적인 이사회 구성 변경의 일환”이라며 “경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사회는 김광일·조주연 공동대표를 포함해 배 전무, 차영수, 김정환, 나병옥 이사와 천준호 감사 등으로 구성됐다.
앞서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지난 13일 “청산을 피하고, 회생을 계속할 수 있는 '인가 전 인수합병(M&A)'를 진행하고자 하며, MBK 파트너스는 이와 같은 홈플러스의 결정을 지지하고 지원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인가 전 M&A는 기존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이 아닌, 신주 발행을 통해 신규 인수자가 대주주로 올라서는 구조다. MBK는 이에 따라 프라그마틱 슬롯 무료 보통주 전량(2조5000억 원 규모)을 무상으로 소각했다. 회생법원은 현재 이 건에 대한 본안 심사를 진행 중이며, 결과는 이르면 다음 주 나올 예정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18일 <이코리아>와 통화에서 “한마디로 빨리 손 털고 싶다는 신호”라며 “회생 절차를 신청했지만 청산 가치가 더 높아 인가받지 못했고, MBK는 신주 인수 구조로 여러 당근책을 내놓으며 조속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또 “이미 투자금 일부는 회수한 만큼,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고 평가했다.
무상소각과 인가 전 M&A 구조는 실질적인 '제로 베이스' 매각이라는 점에서 시장 관심을 끌고 있다. 업계에서는 GS리테일, 쿠팡, 한화, 네이버 등 유통·IT 기업들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등 글로벌 플랫폼도 후보군에 포함된다.
다만 업황 부진과 누적 적자가 변수다. 프라그마틱 슬롯 무료의 2월 결산 공시에 따르면 프라그마틱 슬롯 무료는 지난해 영업손실 3141억 원, 순손실 6758억 원을 기록했다. 외부 감사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은 상당한 규모의 영업손실과 과도한 유동부채를 이유로 해당 감사보고서에 '의견거절'을 표명했다. 일부에서는 통매각이 어려울 경우, 다시 부문별 분할 매각 시나리오가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린아 LS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기존 유통업체보다는 다른 쪽에서 인수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존 경쟁 유통업체들은 수년간 지속된 내수 부진과 온라인 침투, 배송 상향 평준화 등으로 실적 부담이 컸고, 이에 부진 사업을 정리하고 공격적인 외형 성장은 지양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홈플러스의 점유율 이탈이 불가피한 만큼 기존 사업자 입장에서는 경쟁 강도가 완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 연구원은 또 "신규 인수자가 등장하더라도 인수 직후 구조조정과 사업 재정비 등 일정 기간의 전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며 "그 공백을 틈타 기존 유통업체들이 점유율을 확대하고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간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이번 프라그마틱 슬롯 무료 사태는 사모펀드 투자 구조의 명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2004년 제도 도입 이후 20년 만에 136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펀드 수도 6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지배주주 중심의 불투명한 구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사모펀드에 저가 인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피인수 기업의 장기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도 높인다. 일각에선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강화 외에도, 금융당국 차원의 LBO(차입매수) 규제와 사모펀드의 책임경영 유도를 위한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주근 대표는 “현재 상법 개정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며 “과도한 부채 인수 구조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