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5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금융안정 관련 잠재리스크에 대해 경고했다.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은 25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스테이블마네킹 슬롯의 금융안정 관련 잠재리스크에 대해 경고했다. 자료=한국은행

[이코리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중앙은행이 ‘코인런’ 리스크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코인런 리스크, 결제 및 운영 리스크, 외환거래 및 자본유출입 리스크, 통화정책 유효성 제약 리스크 등을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따른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성 및 준비자산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거나 기술 오류 및 관련 범죄 등이 나타날 경우,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연동된 자산(법정화폐)의 가치로부터 괴리되는 디페깅(de-pegging)이나 대규모 상환 요구가 발생해 ‘코인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11월 중 테더, USDC 등의 스테이블코인에서 600번 이상의 디페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의 코인런이 전통적인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도 지적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의 코인런은 스테이블코인 및 관련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통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며 코인런이 단기자금시장 충격 및 은행의 유동성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또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관련 제도 및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양한 결제 및 운영 리스크가 내재하고 있다”며 “비기축통화국에서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경우 환율 변동성 및 자본유출입 확대 등 외환 관련 리스크가 증대되면서 금융시스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어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이 보편화될 경우 통화의 신뢰성 저하, 은행의 신용창출기능 약화 등이 초래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약할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확대 시 금융시스템 및 경제 전반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이 큰 만큼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부 및 금융당국은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하여 다각적이고 철저한 점검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은, 통화정책 주도권 약화 우려...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 지연될까?

한은이 스테이블코인의 잠재적 리스크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관련 법안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의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 또한 다음 달 중 좀 더 구체화된 내용의 ‘디지털자산 혁신법’(가칭)을 발의할 계획이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실제 민주당이 발간한 정책공약집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등 스테이블코인 활용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통화주권을 방어하고 글로벌 결제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신속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될 경우 한은의 통화정책이 잘 먹히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급속히 확산되는 경우 화폐 대용재의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중앙은행의 통제 범위 밖에서 통화가 늘어나게 된다”며 “통화의 신뢰성이 저하되고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제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은은 현재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인 ‘한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실물자산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통화로, 발행주체와 법적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은은 현재 은행권과 손잡고 CBDC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 중이지만 비용 분담 문제를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등은 최근 원화 스테이블마네킹 슬롯 관련 상표권을 등록하며 스테이블마네킹 슬롯 시장 선점을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만약 CBDC보다 원화 스테이블마네킹 슬롯이 먼저 활성화돼 원화 수요를 대체하게 된다면 한은의 통화정책 주도권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 스테이블코인 관련주, 한은 보고서 발표 후 ‘숨고르기’

스테이블마네킹 슬롯의 잠재적 리스크를 우려하는 곳은 한은뿐만은 아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스테이블마네킹 슬롯이 안정적인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금융안정성 및 통화주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앙은행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정치권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주식시장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관련주로 분류된 일부 종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 수혜주로 꼽히는 카카오페이는 지난 2일 3만8150원에서 25일 9만3800원으로 145.9%나 급등했다. 한국거래소는 카카오페이를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하고 24·26일 두 차례에 걸쳐 거래를 정지하기도 했다.

만약 한은의 우려가 정치권에 반영돼 원화 스테이블마네킹 슬롯 도입 논의가 더뎌진다면, 스테이블마네킹 슬롯 관련 종목들의 상승세가 지금처럼 계속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스테이블마네킹 슬롯 수혜주로 분류되는 카카오, 네이버, 다날, NHN 등은 한은이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 25일부터 2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한편, 우지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현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관련 산업을 적극 추진 중이지만, 시장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향후 미국과 같은 수준의 상용화 및 글로벌 주도권 확보는 어려울 것”이라며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어, 후발 주자인 한국이 산업적 주도권을 갖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 연구원은 이어 “지역화폐 형태의 시범 사업 시행 및 관련 벤처 기업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 정부 차원의 조치가 실제 소비진작으로 이어질지는 추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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